본편에 쓰여진 시들이 좋아서,
시를 거의 다 싣었다.
인생에 정면으로 맞서다 보면,
누군가 시련이라는 강펀치를 얻어맞게 되어있습니다.
아무리 근성이 있는 사람이라도,
맨 처음 맞는 한 대는
정말 아프게 느껴지는 법입니다.
하지만 두 대째부터는 별로 아프지 않습니다.
처음 한 대를 맞은 곳이 마비되었기 때문입니다.
사람들은 한 대만 맞으면 그 아픔이
언제까지나 계속될 거라고 생각하기 때문에
무서워서 다가서지 못합니다.
하지만, 아프게 느껴지는 것은
처음에 맞는 한 대 뿐입니다.
인생에 정면으로 맞서며 살아가는 사람은
처음의 한 대를 일찌감치 경험한 사람입니다.
특히 혼자 있는 것을 좋아하고, 그것이 오히려 편하다고 얘기하는 사람일수록 스스로 고립되어있다는 것을 알지 못한다.
-> 사람들과 어울리지 못할수록, 중독이 심함
-> 외향성이 높은 사람들이 중독증세가 심하지 않음.
어른의 기준은 책임지는 능력에 있다고 했다. 무엇보다 어른이란 말은 행동에 대해 책임지는 존재인데, 특히 사람됨의 출발점이라고 할 수 있는 가정에서 가족 문제의 대부분의 원인은 책임 회피 때문이라고 했다.
성숙한 사람은, 자신의 마음까지도 객관화해 볼 줄 알고 문제를 문제로 정확하게 인식한다. 그러나 심리적 미숙아일수록 사건과 사람을 구분하는 능력과 생각과 느낌을 구분하는 능력이 부족하다. -> 지하철에서 나이 먹은 노인들이 종종 술먹고 행패부리고, 너 몇살이야~!를 시전하며 서로 싸우는 광경. 나이만 먹었다고 어른이 아닙니다.
사는 연습
걱정 없는 인생을 바라지 말고
걱정에 물들지 않는 연습을 해라.
- 알랭
저자에게 있어서의 무의식은 떳떳하지 못한 불편함으로 이를 친구들이나 주변 사람들이 알아챌까 노심초사하면서 항상 숨기고 싶은 마음이었다. 이런 무의식의 마음이 성장하는 내내 행동 하나하나 나를 옴짝달싹 못하게 붙잡고 있을 만큼 나 스스로를 깨닫는 작업에 정말 많은 노력과 대가를 지불하고 또 지불하게 했다.
저자는 남들이 보는 자아와 자신이 바라보는 자아의 괴리 때문에 늘 불편하고 이런 불편함 속에서 방어기제가 나왔다.
-> 정신분석학에서는 이럴때 방어기제가 나온다고 하는데, 방어기제의 종류는 어려가지이다.
-> 그 중에서 투사가 최악인데, 투사는 자신의 잘못을 남에게 투영하는 것, 소위 남탓, 사회탓 등등이라고 볼 수 있다. (내가 제일 극혐하는 것 중 하나고 역시 이게 제일 질이 낮았구나) 그렇다면 최고의 방어기제는? 바로 유머와 승화.
거부당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
당신은 거부당하는 것을 경험하려 하지 않는다.
그래서 거부에 대한 두려움은 마음 속에서 점점 더 커져가고 당신은 더욱더 피하려 한다.
자신에게 거부를 경험하도록 허용하면
거부에 대한 두려움은 점차 작아져서 마침내 깜빡거리게 된다.
이 깜박임은 계속될 것이다.
그것은 섬세함의 성질이기 때문이다.
두려움은 깜박임으로 남아 있지만
설령 거부당하더라도
당신이 느끼는 것은 그것이 전부일 것이다.
꺼질듯이 깜박거리는 희미한 불빛
이 정도는 당신에게서 문제 되지 않을 것이다.
문제는 거부당하는 경험을 회피하려는
당신의 모든 행위에서 발생한다.
당신은 그 과정에서 삶에 무감각해진다.
수치심에 찌든 자아 정체감을 가진 사람들의 삶의 방식은 어떠한 경우라도 무조건 살아남는 데만 초점이 맞춰져 있다. 한마디로 무기력에 찌들어 있는 삶이다.
-> 무기력 뿐만 아니고 무매력이다. 난 이런 사람들과 얘기하면 기가 빨린다. 집에가고 싶고 재미가 없다. 너무 싫음.
무기력한 사람들은 무기력을 이겨내고자 부지런히 운동하고 소일거리를 찾지만 무턱대고 바쁘게 살고 몸을 고단하게 한다고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라,
-> 스물한살때 했던 고민이다. 이때 나는 바쁘게 사는 것이 최고라고 생각했었지. 절대 아님. 그냥 시간에 메여 살았을 뿐.
시간을 두려워했던 나의 결핍이었다.
무엇보다 각자 생각하는 수준, 즉 정신 레벨을 무기력보다 높은 단계로 끌어올려야 한다고 강조했다.
-> 아!!!!!!! 진짜 공감................
난 믿는다. 정말 생각하는 대로 세상이 내게 펼쳐진다는 것을..
실제로 경험했기도 했고.
호킨스박사의 의식혁명, 의식 레벨 수준을 참고합시다.
대충 내가 내 생각을 곁들여서 말하자면,
200 500 700으로 나뉘는데,
200 이전은 부정적 감정,
200 은 용기의 감정, -> 긍정적으로 , 생산적으로 살게 됨.
500 은 사랑의 감정, -> 타인을 생각하게 됨
700은 깨달음의 감정, -> 대중 유혹술의 정점. 영적인 만족
200 이하의 삶에서, 스무살 초반에 200을 넘기고,
스무살 중반에 다시 200~300을 왔다갔다 거리다가, (때로는 200 아래까지 내려갔음. )
스무살 후반에 500의 감정을 알게 되었다.
내가 500이라는게 아니고, 500이 될 준비,
즉 타인에 대한 진정한 관심( 사익 추구가 아닌,)
예술로써 타인을 즐겁게 해주고 싶은 마음,
이 모든것들을 체화하고 그렇게 살고 있다는 것.
타인이 나를 어떻게 본다 하더라도
타인이 나를 어떻게 본다 하더라도
그것은 나에게는 관계 없는 문제다.
그것은 나의 문제라기보다는
차라리 그들의 문제인 것이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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